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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취업을 희망하는 그대들은 좀 더 예뻐야한다

kwondroid 권오철 2021. 4. 23. 02:55

이 게시글을 고졸의 업무 환경과 월급 등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20대 초반의 푸른 젊음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학은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곧바로 취업을 했다. 처음엔 좋았다.

수평적인 문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개발 프로세스, 좋은 사람들... 내가 생각하는 스타트업의 장점을 최대한 챙겨주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근데 그 좋은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업무 압박은 심해졌고 스트레스는 심해졌다. 팀원 간의 관계도 힘이 들었고 어느샌가 난 '퇴사하고 싶다'가 입에 붙게 되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업무가 하나둘씩 밀리기 시작했고 대표와 팀장님의 꾸중을 서서히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대표님과 팀장님의 꾸중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분들은 나에게 '피곤한 사람들'이라는 사람으로 인식이 됐고 그 때문에 스트레스도 절로 생겼다. 스트레스가 업무 효율을 줄이고 이는 곧 꾸중과 업무 압박으로 오는 악순환의 영향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꾸중을 듣고 있던 때였다. 사람의 몸은 지극히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감정을 표시하는데 그 덕분에 팀장님은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스트레스가 눈에 보인 게 맞겠지...)

팀장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가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보면 알겠지만 이 정도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매우 지당한 말씀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꾸중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다음에 팀장님 입에서 나온 말이 내 가슴을 한대 후려쳤다.

"너 영화나 드라마 보면 아빠들이 회사에서 된통 깨진 날, 퇴근하면서 자식들 먹일 치킨 사가는 장면 본 적 있지? 그런 게 사회생활이야."

그때 나는 퇴근 이후 1일 1 치킨, 피자, 패스트푸드를 달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음식이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저 업무 스트레스에서 나오는 무의식적인 식욕이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매일 밤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가면서 가슴 한편이 아렸다. 이 말이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자식 딸린 몸은 아니지만 밤에 내 돈으로 산 음식을 누군가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 하루의 마지막 마무리가 되는 것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내 나이 21살, 매우 어렸다. 어린 나이에 취업을 해서인지 고민을 갖고 있었다. 학생 때는 취업을 바로 하고 싶었지만 막상 현업이라는 프로의 세계에 들어와 보니 너무 힘들었고 비록 내가 원해서 한 취업이었지만 다른 21살은 신나게 대학 가서 신나게 놀고, 연애도 하고, 섹스도 하면서 재미있게 놀 시간에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싶었다.

어차피 겪을 시련이라면 좀 더 늦게 겪어도 되는데 21살 인생에 드라마 속의 나오는 그 장면이 공감을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그 뒤로도 나는 고졸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난 그런 사람들을 보며 꼭 이런 이야기를 한다.

제발 대학 생활을 즐기라고, 어른의 세계는 나중에 알아도 된다고, 내 돈으로 산 음식을 누군가가 먹는 것을 보며 행복해하는 그 감정을 알기엔 넌 너무 어리다고...

가만 보면 내 인생은 컴퓨터로 꽉 차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때 나는 라디오나 뜯으며 놀고 있었다. 다른 애들 공부할 때 난 책상 위에 노트북 꺼내놓고 컴퓨터 공부를 했었다. 다른 애들 중학 공부 예습할 때 나는 c# .net 3.0을 공부하고 있었다. 이는 성인이 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내가 인생이 재미있었겠는가?

개발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아 거기서 오는 초조함때문인지 평소 항상 우울감을 갖고 있었으며 공부를 많이 하면서도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의 사슬은 입대했을 때 끊어졌다. 군 복무를 6개월 정도 남겨두고 시작한 개발 공부, 그리고 전역을 한 지금도 스트레스의 정도가 매우 적은 상태에서 실력 향상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한번 새로 고침 하고 나니 훨씬 살만하게 된 거다.

 

나 같은 경우 군 복무를 하며 새로고침을 했지만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할, 바로 취업할 친구들은 나처럼 늦게 새로고침을 하지 말고 좀 더 일찍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대학으로 하여금 인생을 한 번은 새로고침을 했으면 좋겠다. 대학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저 나처럼 스트레스와 살에 찌들어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른의 세계에 일찍 발을 담그고 20대 초반의 그 풋풋하고 예쁜 인생을 나처럼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또래의 유행을 모르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릴 때만큼은 개발자 OOO가 아닌 인간 OOO이 됐으면 좋겠다.

사표를 낼 때의 그 짜릿함은 나중에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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